마땅히 갈 길
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인생을 ‘길’에 비유했다.
가지 않은 길
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.
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
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
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
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.
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,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,
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,
풀이 더 무성하고,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.
사람이 밟은 흔적은
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,
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이 없고
두 길은 그 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.
아,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! 생각했지요.
인생 길이 한 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
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.
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
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.
<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, 그래서 나는
─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,
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> 라고.
프로스트보다 먼저 인생의 ‘길’에 대해서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다. 솔로몬이다.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의 왕이었다. 그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다(왕상4장, 10장). 무엇보다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다.
솔로몬은 사람에게 ‘마땅히 가야 하는 길’이 있다고 말한다.
“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선한 길(the good way, wherein they should walk)을 가르쳐 주시오며”(대하6:27)
“마땅히 갈 길(the way he should go)로 아이를 훈련시키라. 그리하면 그가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.”(잠22:6)
주님께서도 이사야를 통해서 그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다. “네 구속자시요,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, 나는 너를 가르쳐 유익하게 하고 네가 마땅히 갈 길(the way that thou shouldest go)로 너를 인도하는 주 네 하나님이라.”(사48:17)
다윗은 그 길을 ‘주의 길’이라고 불렀다. “오 주여, 주의 길들(thy ways)을 내게 보이시고 주의 행로들(thy paths)을 내게 가르치소서.”(시25:4)
주의 길은 의의 길(the way of righteousness)(벧후2:21)이고, 바른 길(the right way)(벧후2:15)이다. 그 길은 의롭고 참되다(계15:3). 그 길은 의로운 자들의 길(the way of the righteous)이다(시1:6).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정의와 공의를 행한다(창18:10). 그 길은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(the way of the tree of life)이다(창3:24). 그 길은 곧 예수님 자신이시다(요14:6).
주님을 신뢰하는 자의 길을 주님께서 인도하신다. “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.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.”(In all thy ways acknowledge him, and he shall direct thy paths.)(잠3:6)
그러나 사악한 자들은 주의 길을 멸시한다. “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이르되, 우리를 떠나소서. 이는 우리가 주의 길들(thy ways) 알기를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니이다.”(욥21:14) 이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(롬3:18). 그들은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한다.(롬3:17)
이들은 바른 길( the right way)을 저버리고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는다(벧후2:15). 의로운 자들의 길 대신 가인의 길(the way of Cain)을 따라 걷는다(유1:11). 그러나 그 길에는 파멸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.(롬3:16) 이들은 대가를 바라고 발람의 잘못을 따라 탐욕을 내며 달려가다가 고라의 반역 가운데서 멸망한다(유1:11).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길(the way of the ungodly)은 망할 것이다(시1:6).
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독한 길(their pernicious ways)을 따르기 때문에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는다(벧후2:1~2). 경건한 자들은 이런 거짓된 길(false way)을 미워한다(시119:128).
인생을 살면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? 프로스트는 망설임 가운데 ‘사람이 덜 밟은 길’을 택했다. 그에게는 미개척의 새로운 세계가 매력으로 다가왔다. 그것이 반드시 주의 길일 필요는 없었다.
당신은 ‘가지 않은 길’을 갈 것인가 ‘마땅히 가야 할 길’을 갈 것인가?