로마 카톨릭 배교의 역사
박노찬
연 도 |
사 건 |
내 용 |
주 요 인 물 |
220 경 |
|
· 로마 감독 카릭스투스가 처음으로 마16:18을 근거로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으며 로마의 감독이 그의 계승자라고 증명하고자 함 |
카릭스투스 (218-223 로마교황) |
|
· 원래 로마교회가 축출됨 → 이들은 알프스로 들어가고, 코르넬리우스파가 로마교회의 이름으로 행세하다가 콘스탄틴이 공식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로 인정 · 성직계급제도(hierachy) 본격화됨 · 주교의 직위가 법적인 규례가 됨(카르타고이 키프리안에 의해 발전) |
이교주의자 코르넬리우스파 |
|
300 경 |
|
· 죽은자를 위한 기도 시작 · 십자가를 긋는 것 시작 · 마리아 평생 동정녀 교리가 가르쳐지기 시작 · 침례중생설 등장 · 4세기경부터 평신도의 설교가 금지됨 |
|
312.10.28 |
멜비안다리 전투 |
· 대 음모자 콘슨탄틴 황제가 하늘 나타난 십자가의 환상을 봄 |
콘스탄틴 |
313 |
밀라노 칙령 |
· 기독교 공인 → 참그리스도인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술수 → 교회와 국가의 통합 |
콘스탄틴(태양신숭배자) |
320 |
|
· 밀랍 초(Wax Candles) 등장 |
|
321 |
|
·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 |
콘스탄틴 |
325 |
니케아 종교회의 (1차) - 318名 참석 - Ecumenical Councils |
· 교회의 세상권력 통제를 위한 새로운 체제 구축 (많은 주교들의 협조로 이루어짐) · 콘스탄틴은 자기의 모든 신하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도록 명령함 · 콘스탄틴은 "최고의 성직자" 칭호를 받음 · 성찬식 집례가 성직자에게만 허용됨 ·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의 감독을 최고의 대감독이나 교부(추기경)로 임명함 · 동방교회 수립 · 부활절 제정 / 유월절 거부 / 아리우스 정죄 (참고)결의내용 : "성자는 성부와 함께 동등하며, 동일 본질이며 영원한 분이시다" |
콘스탄틴이 소집 아리우스/ 알렉산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아타나시우스 |
365 |
라오디게아 종교회의 |
· 결의내용 : "개인은 교회에서 찬송을 작시, 작곡할 수 없고, 부를 수 없다" · 이에 따라 정규적인 임명자 외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일반인들은 찬송을 부를 수 없게 됨. |
|
375 |
|
· 천사, 죽은 성인, 형상 숭배 |
|
378 |
|
· 로마 감독 데마수스가 이교도 최고 제사장 직인 Pontifix Maximus (최고 승원장)로 선임됨 (이 칭호는 Julius Caesar 에 의해서 바벨론 이교주의로부터 로마 황제들에게 유입되었던 것임) |
데마수스 |
380 |
|
· 기독교 국교 선포 |
데오도시우스 |
381 |
콘스탄티노플 회의 (2차) - 150名 참석 |
· 니케아 종교회의 결과 승인 · 삼위일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음 · 아폴리나리우스파 정죄 |
데오도시우스가 소집 멜레티우스 |
394 |
|
· 미사가 매일의 의식이 됨 |
|
426 |
|
· 암흑시대 시작 |
|
431 |
에베소 종교회의 (3차) - 250名 참석 |
· 마리아가 "하나님의 어머니(Mother of God)"라고 공인됨 (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의 가르침을 승인한 것임) → 원래 그 칭호는 "Isis"의 칭호였음 · 에베소는 오래 전부터 다이아나를 동정녀와 어머니 여신으로 경배해온 도시임 · 유아세례 인정 ->어거스틴의 가르침 · 교황이 소유하고 있는 열쇠가 곧 사도 베드로에게 주어졌던 바로 그 권력의 열쇠라고 주장함 (로마 교황이 Fontifix Maximus가 된 지 53년 후) |
데오도시우스2세 발렌티안3세 |
* 451 |
칼케돈 공의회 (4차) - 500~600名 참석 |
· "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" 반복 cf) 초기수백년간 교황들은 마리아숭배를 금했었음 (참고)결의내용 : "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혼합되거나 변하지 않고,나눠지지 않고,분리될 수 없다" |
레오1세/ 디오스쿠르스 유티케스 |
|
· 사제들이 특별한 의복을 입기 시작 |
|
|
526 |
|
· 병자성사가 행해짐 |
|
529 |
|
· 몬테가시노 수도원이 설립됨 → 이것은 후에 모든 수도원의 모델로 승인됨 · 수도사들에게 가난과 독신생활 외에도 은둔생활이 부과됨(6세기경) |
|
553 |
콘스탄티노플 회의 (5차) -165名 참석 |
· 어거스틴의 "신의 도성"(De Civitate)을 세상통치를 위한 이론으로 받아들임 → 이 이론의 핵심은 교회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것으로, 카톨릭이 주장하는 무천년설의 토대가 되었음 · 이 공의회의 결정하에 세속 국가는 점차 로마의 종교가 다스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 제국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함 |
유스티아누스 황제 유티키우스 |
593 |
|
· 연옥 교리 등장 (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결하게 되는 장소가 있다고 함 ) "우리는 연옥이라는 곳이 있음을 믿음으로 아나니, 그곳은 사소한 실수들이나 혹은 죄로 인한 일시적인 징벌을 면죄받는 곳이다." |
그레고리 교황 / 죠지 1세 |
600경 |
|
· 예배에 라틴어 사용 시작 · 마리아, 죽은 성인들, 천사들에게 바치는 기도 시작 · 그레고리 대제가 새로운 중세 신학을 요약함 (행위에 의한 구원, 연옥, 미사 등 포함) · 그레고리는 처음으로 교회 군대를 결성하고 자금을 조달함 |
|
610 |
|
· 보니페이스 3세(Boniface Ⅲ)가 최초로 교황(Pope)으로 공포됨 |
|
680-681 |
콘스탄티노플 회의 (6차) |
· (참고)결의내용 : 단일신론 거부/ 호노리우스 교황을 이단으로 정죄함 |
콘스탄틴4세 |
709 |
|
· 교황의 발에 입마추는 관습 시작 (이전에는 이 관습이 단지 황제들을 위해서만 행해졌음) |
|
* 787 |
니케아 회의 (7차) |
· 죽은 성도와 순교자들에 대한 기도가 공인됨 · 성상숭배를 합법화시킴 · 유물숭배 (유물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떤 주교도 교회건물을 헌당할 수 없게 함) · 성자숭배 |
콘스탄틴6세 이레네 황후 |
847 |
|
· 중대한 위조 문서들이 모두 수집됨(이 모든 문서들은 교황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음) - 평신도는 주교에 대해 고소할 수 없다 - 사제는 상급자에 대해 고소할 수 없다 - 주교에 대한 유죄판결은 72명의 증인을 필요로 한다 - 주교는 세속 재판관 앞에서 고소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지 않는다 |
이시도르 |
848 |
미욱스 회의 |
· 유대인에 대한 법적 규율을 강화함 (반셈족주의의 근원은 대주교 아고바르드(778-840)가 쓴 5개의 반유대인 편지) |
|
850 |
|
· 소금을 녹인 성수의 권위 인정 |
교황 레오4세 |
858 |
|
· 콘스탄틴의 거짓 기증 문서들 등장 - 콘스탄틴이 로마에게 온 땅의 세속 권력에 대한 절대적인 우월권을 부여했다는 내용 |
|
* 869 |
제8차 종교회의 (콘스탄티노플) |
· 지도적인 감독의 문제가 쟁점 · 희랍정교회와 로마카톨릭이 분리됨 |
바시리우스 마레도 |
890 |
|
· 성 요셉 숭배가 처음으로 나타남 |
|
927 |
|
· 추기경 대학이 시작됨 |
|
965 |
|
· 벨의 세례가 제정됨 |
교황 요한14세 |
995 |
|
· 죽은성도들을 성자로 인정하는 것이 시작됨 |
요한15세 |
998 |
|
· 금요일과 사순절 기간 동안에 금욕이 부과됨 |
|
1010 -1012 |
유대인 대학살 |
· 루엔, 오를레앙, 리모게스, 마인즈와 로마 등지에서 발생 |
|
1054 |
카톨릭 - 정교회 분리 |
· 로마 교황 레오4세가 콘스탄티노플 교부(그리스 정교회의 우두머리)를 파문함 · 콘스탄티노플 교부 또한 로마 교황(희랍 정교회 교부)를 파문 |
교황 레오4세 |
1059 |
|
· 추기경단(the College of Cardinals)조직 → 교황 선출 기능을 담당 |
|
1074 |
|
· 독신생활 명령 "로마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창설되었고 로마 교황만이 보편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. 그만이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심판당하지 않고 로마교회는 결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영원히 오류를 범하지 않으리라" |
교황 그레고리7세 →'이교도는 죽여도 좋다'고 함 |
1096 |
십자군 원정 시작 |
· 팔레스타인을 회교도들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목( 7차 이상에 걸쳐 행해짐) · 그리스정교인들 및 자기들과 입장이 다른 참 기독교 신자들을 대량 학살함 · 십자군 원정의 결과 교황청의 권위가 격상됨 |
우르반2세 |
1100경 |
|
· 미사를 드릴 때 사제에게 돈을 바치는 관습이 보편화됨(시작은 7~8세기 경) |
|
1123 |
제1차 라테랑 회의(서방 공의회) (서방교회 회의) -300名참석 |
· 공식적으로 성직자에게 독신생활을 부과함 |
교황 칼릭스투스2세 |
1139 |
제2차 라테랑 회의(서방 공의회) |
· 교황권에 대항하는 불순응자들(페트로-불로시안파, 아놀드파)을 처단할 목적으로 소집 |
교황 이노센트2세 |
1170 |
|
· 사제 앞에서만 유언할 수 있도록 법령 공포 → 임종 시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 |
교황 알렉산더3세 |
1179 |
제3차 라테랑 회의(서방 공의회) |
· 왈도파와 알비겐파의 정죄를 위해 소집 · 칼로 이들을 죽이도록 명령함 |
월터 맵 |
1184 |
베로나 공의회 |
· 종교재판소(Inquisition) 인정 - 교황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고문을 주도록 결정 · 왈도파를 파문함 |
교황 루시우스3세 |
1190 |
|
· 면죄부 판매 시작(십자군 원정시부터 유행함) · "선행", "연옥" cf) 면죄부는 원래 사죄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바치는 자선헌금이었으나 16C 초에는 교황청의 중요한 수입원이 됨 |
교황 클레멘트3세 |
1215 |
제4차 라테랑 회의 - 412名의 감독과 800名의 수도원장과 부원장등 참석 |
· 유대인들에게 노란'수치의 뱃지'착용 명령 · 비밀 고해 제정 · 화체설을 공식 교리로 선포 · 국가에게 이단자 처벌 권한을 부여함 · 교황 이노센트 3세가 교황직의 세속적 위치를 역사상 그 절정에 올려놓음 "베드로의 후계자는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다. 그는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재자로서 선택되었다. 그는 하나님보다는 아래, 인간들보다는 위에 위치한다" |
교황 이노센트3세 |
1226 |
|
· 성체 숭배가 시작됨 |
|
1229 |
톨루스 회의(발렌시아 공회) |
· 평신도에게 성경 소유 및 읽기 금지 · 이단심문소 허용 · 자국어 성경 번역 금지 |
교황 그레고리9세 |
1234 |
|
· 카메라 아포스틀르카(재정 담당부) 설치 - 증식되는 교회 재산 관리를 위해 설치 |
|
1245 |
리용 회의 |
· 독일황제 프레드릭1세 파문 목적 |
교황 이노센트 4세 |
1252 |
|
· 고문을 인정함 |
교황 이노센트 4세 |
1274 |
|
· 로마파와 희랍파의 통일 시도 -> 실패 |
|
1287 |
|
· 수도사의 어깨걸이 등장 |
영국의 승려 시몬 스토크 |
1300.2.22 |
희년(Jubilee)선포 |
· 교황 보니페이스 8세(성년의 창시자)는 이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고 성 베드로성당, 성 바울성당 방문자에게 "일체의 모든 죄를 아무런 보류사항 없이" 사해줄 것을 약속함 |
|
1301 |
|
· "Unam Sanctam"("하나 그리고 거룩"을 의미) "모든 인간들이, 일체의 예외가 없이 로마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하다" -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기 위해 로마 교황에게 승복해야 한다 - 물질의 검(劍)은 교회를 위해 빼야 하고, 영적인 검은 교회가 뺀다 - 교황의 수위권이 세속적인 일에도 행사되어야 한다 - 세속 정권은 교회를 상위 권세로 여기고 승복해야만 한다 ·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유일한 참교회이고, 이 교회 밖에서는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함 |
보니페이스8세 |
|
|
참고 : 1320~1384 죤 위클리프 (영국) 1373~1415 죤 후스 |
|
1378 -1417 |
교황청의 대분열 (the Great Papal Schism) |
· 서로 경쟁하던 세 명의 교황, 즉 우르반4세, 클레멘트7세, 알렉산더5세가 서로 파문함 |
|
1415 |
|
· 죤 후스 화형 (보헤미야) |
|
1410 -1418 |
콘스탄스 회의 |
· 교황 마틴5세에의해 세명의 교황이 쫓겨남 · 교황 알렉산더5세는 볼로냐에 수감됨 · 1414년회의에서 평신도들에게 주의 만찬시 포도주를 주는 것 금지가 선포됨(그레고리12세) |
|
1439 |
플로렌스 회의 |
· 연옥 교리 채택 (1548년 재확인) · 7가지 성사 한정 |
유게니우스4세 |
|
|
참고 : 1452~1498 사보나롤라 (이태리) |
|
1453 -1454 |
실레시아 대학살 |
· 종교재판소장인 카피스트라노 성 요한에 의해서 시작됨 |
|
|
|
참고 : 1481~1531 쯔빙글리 (스위스) 1483~1546 마틴루터 (독일) - 1530년 멜랑크톤과 함께 루터교회 조직 1509~1564 죤 칼빈 (프랑스) - 1541년 장로교회 출현 |
|
1508 |
|
· 염주 |
교황 율리우스3세 |
1521.1. |
|
· 루터를 이단으로 선포함 |
교황 레오10세 |
|
|
참고 : 1534(5) 영국 국교회 시작 |
|
1540 |
|
· 예수회 공인 |
교황 바울3세 |
1555 |
"옥스버그의 평화" |
· 로마카톨릭과 루터교회의 상호 불간섭 협정 |
|
|
|
참고 : 1560 죤 녹스 스코틀랜드에서 최초의 장로교회 설립 |
|
1545 -1563 |
트렌트 회의 (45 - 47) (51 - 52) (62 - 63) |
· 교회의 전통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닌다고 선언 · 외경들이 성서에 첨가됨 (외경 중 상당부분을 정경으로 인정) · 화채설 부인하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 (구원에 필수불가결하다고 함) · 성인들의 중보 부인하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 · 죽은사람들을 위해 드리는 미사 인정 (순교자들의 사체 숭배 결정) →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인들이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함 · 연옥 개념을 교리화시킴 ·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에 이른다고 믿거나 그리스도가 갈보리에서 완벽한 속죄를 이루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파문당함 · 면죄부의 유용성 재확인 · 7성례전 고수 cf) 로마 카톨릭 교리의 핵심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타파하기 위한 목적 |
교황 바울 3세 ~ 교황 피우스 4세 |
1572.8.22 |
성 바돌로메 대학살 |
· 프랑스 왕의 여동생이 프로테스탄트 지도자인 꼴리니 장군과 결혼하게 된 사건이 발단 · 결혼식 축하연 4일째 되던 날 한밤중에 신호를 받은 병사들이 모든 프로테스탄트 집에 난입 · 처음 3일동안 만명 이상의 프로테스탄트 살해 (프랑스 칼빈주의자들인 위그노(Huguenots) 학살) · 파리로부터 전국적으로 확산, 총 7만명(혹은 10만명) 학살됨 |
|
1600경 |
|
· 스카플라리오 등장 - 모직으로 된 긴 천 조각을 옷의 안이나 위에 걸치는 것으로, 그 목적은 이런 스카플라리오를 축복한 그룹들이 제공하는 면죄를 얻기 위한 것임 |
|
|
|
참고 : 1611 킹제임스 성경 |
|
1641.10 |
아일랜드 대학살 |
· 예수회의 창시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(Ignatius Loyola)가 베푼 향연에서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이 동시에 살해됨 (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약 40,000 명이 무참히 살해됨 ) |
|
1648 |
"웨스트라리아의 평화" |
· 로마 카톨릭, 루터교회, 장로교회간의 평화협정 참고 : 16세기 말 세속정부에 의해 뒷받침된 다섯 개의 국교회들 즉, 로마카톨릭, 희랍정교회, 영국교회, 루터교회(독일교회), 스코틀랜드교회(장로교회) 모두가 재침례교도와 왈덴시스를 핍박하였음 |
|
|
|
참고 : 1703 죤 웨슬레 / 1708 찰스 웨슬레 / 1714 죠지 화이트필드 / 1788 알렉산더 켐벨 |
|
1814 |
|
· 예수회(Jesuits) 부활 |
|
1854.11.8 |
|
· 마리아 무염시태(Immaculate Conception) → 마리아가 임신하는 첫 순간에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특권과 은혜로 인해 원죄의 모든 더러운 흔적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것 |
교황 비오9세 |
1856 |
|
· 연옥협회 (Purgatorian Society) 설립 → 죽은 후에 자신을 위해 미사를 드려주도록 미리 등록하고 돈을 지불케함 |
|
1864 |
|
· 80가지 죄의 요목 선언 - 로마 교회가 승인하지 않은 종교나 양심이나 언어나 출판 및 과학적 발견의 자유를 억제함 "하나님의 법에 관한 한, 어느 누구에게도 카톨릭 이외의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참 권한이 없고, 카톨릭 교리 이외의 다른 교회의 회원이 될 참 권한이 없으며, 카톨릭 교회가 명하거나 인가한 것 이외의 어떠한 다른 형태의 예배를 행할 권리가 없다" - 세상의 모든 규율에 대한 교황의 세속적 권위를 주장함 |
교황 비오9세 |
1870 |
바티칸 회의 |
· 교황 무오설 선포 → "교황은 직무중의 그리스도로서 재판하고 권능을 가지신 그리스도이시다" |
교황 비오9세 |
1908 |
|
· 신랑 신부의 종교가 달라 천주교 사제가 집례하지 않는 모든 결혼을 무효화시킴 |
|
1921 |
평신도 사도직 운동 시작 |
· 아일랜드 더불린 시에서 결성됨 · 마리아 군단을 통해 시작됨 · 목적은 니콜라 체제를 굳히기 위한 작전임 |
|
1924 |
공산주의자들과 제1차 협상 |
· 러시아 정교회를 로마 카톨릭 교회로 바꾸겠다는 교황 비오9세의 계획을 레닌에게 전달 · 러시아 정교회 교인들을 암살하기 위한 조치들이 만들어짐 |
교황 눈시오, 유게니오 파셀리 |
1929 |
바티칸 - 파시스트 협약 |
· 이탈리아독재자 뭇솔리니와 교황에 의해 체결 · 추기경 파셀리는 자기 교회의 미래는 공산주의가 아닌 나찌와 함께할 것이라고 확언 |
교황 비오11세 |
1933.6 |
히틀러 - 바티칸 협약 |
· 교회 문서 16조 →"나는 합법적으로 설립된 나찌 정부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. 나는 나찌정부를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유해한 행동들을 피하려고 애쓸 것이다" |
|
1946.5.13 |
|
· "파티마의 숙녀"(마리아)에게 왕관을 씌우고 그녀를 "세상의 여왕"으로 공포함 |
교황 비오11세 |
1950.11.1 |
|
· 마리아 몽소승천(蒙召昇天)(Assumption of Mary) 선언 → "동정녀 마리아의 육과 혼이 천상영광으로 승천하셨도다" [교황교령] · 이것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줌 |
교황 비오12세 |
1960 |
바티칸 - 모스크바 협약 |
· 공산주의의 주요 적이었던 로마 카톨릭 교회가 공산주의와 제휴함 |
교황 비오11세 |
1962 -1965 |
제2차 바티칸 회의 |
· 로마의 공식적인 이미지 재형성에 주력 · 금요일에 고기를 먹는 것, 성찬식 전에 먹고 마시는 것, 성체와 기타 다른 기물들을 만지는 것 등 예전에는 행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들이 폐지됨 · 주제는 에큐메니즘(세계 종교일치) - 종교통합을 위한 진일보가 이루어짐 · 공산주의와 제휴 · 교리의 재확인 : - 교황수위권 - 로마 카톨릭 사제직 - 미사의 화체설 - 고백성사 - 성유지순례 - 성례전적인 (sacramental) 믿음+행위복음 - 성경과 동등시되는 카톨릭 전승 - 그리스도와 공동대속자이자 하늘황후(하늘의 여왕)인 마리아 - 연옥 - 죽은자를 위한 기도 - 죽은자에게 하는 기도 등 · 외형적인 변화가 있었으나 교회 교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며, 사실상 그것을 강화했음 |
교황 요한23세 |
1965 |
|
· 마리아는 "교회의 어머니"라고 선언 "교회의 동정녀가 이제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다" |
교황 바오로 6세 |
|
· 카톨릭 교회 내에서 오순절 은사운동이 시작됨 |
|
|
1970년대 |
|
· 에큐메니즘의 확산 · 기독교인들을 "분리된 형제들"이라고 부르기 시작함 |
|
1973 |
|
· 빌리그래함의 "Key 73" 집회를 기점으로 로마 카톨릭과 기독교의 최초의 중요한 합작이 시작됨 |
|
1980년대 |
|
· 교황 요한 바오로2세 - 21회에 걸친 세계 순례 (미국, 한국, 중앙아메리카, 극동 지방의 국가들, 스위스, 캐나다 등 포함) |
|
1982 |
|
·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암살 미수사건 →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이 때 입은 심한 상처로부터 목숨을 구해 준 것이 마리아라고 함 |
|
1984 |
|
·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성 베드로의 바실리카에서 마리아에게 이 세상을 봉헌함 |
|
1987 |
|
· 마리아 숭배를 위한 해로 지정 |
교황 요한 바오로 2세 |
1996 |
|
· 교황이 진화론 인정 |
|